“죽을 때 돈 싸가지고 갈것도 아니고…” 가난한 환자들에게 무료로 치료해주던 최고령 의사 할머니, 전해진 충격적인 ‘근황’에 모두가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한원주 박사가 지난 9월 30일 94세로 세상을 떠났다. 한원주 박사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의사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부친 한규상과 항일 투쟁을 지원하던 모친 박덕실 사이에서 세상에 나왔다. 그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교육과 의술에 대한 깊은 신념을 가졌다.

한원주 박사님의 일생

한원주 박사는 1949년 고려의대 전신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 1959년에는 산부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는 시카고병원과 메릴랜드병원에서 전문의 자격을 이어 받았다. 10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가난한 조국을 위해 귀국하게 된다.

한원주 박사는 개원의로서 성공을 거두지만, 1978년 남편의 갑작스런 별세 후, 그의 삶은 의료봉사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한국기독교의료선교협회 부설 의료선교의원에서 시작해, 전인 치유진료소를 개설하며, 병의 원인뿐만 아니라 환자의 생활 환경까지 고려한 치료를 실천했다.

한원주 박사는 은퇴 이후에도 의사로서의 역할을 끝내지 않았다. 2019년에는 매그너스요양병원 내과장으로 재직하며 백세 현역 의사의 길을 모색했다. 평일에는 병원에서 환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작은 배려와 관심을 실천했다. 그녀의 이러한 봉사정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수상경력과는 별개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선한 영향력으로 누구보다 아름다운 삶을…

한원주 박사는 본인이 받는 월급의 대부분을 사회단체에 기부했고, 수여받은 상금마저 기꺼이 기부하며, 그녀만의 신념을 지키기도 했다. “남은 생도 노인환자가 희망을 잃지 않도록 현역 의사로 그들 곁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녀의 말은 그녀가 걸어온 길을 증명하고 있다.

한원주 박사는 9월 7일까지도 환자 진료를 이어갔다. 그녀의 마지막 날까지도 의사로서의 역할을 다하려는 그녀의 의지는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녀가 남긴 말은 “힘내라. 가을이다. 사랑해”였다. 이 말은 그녀가 떠난 후에도 많은 이들의 마음에 깊게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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