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경남 창원에 살고있는 쌍둥이의 엄마입니다.
오늘 전 지금 키우고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쌍둥이를 낳을때 도움을 주셨던 분에대해 사연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때는 저희 쌍둥이가 태어나는 날이었어요.
저는 그날 마트에서 장을 보고있었고 갑자기 심한 진통이 시작 되더니 도저히 참을수가 없더라고요.
저희 남편에게 전화를 했지만 남편은 직장 동료와 술을 마시고 있다며 차는 못끌고와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하더라고요. 지금 빨리 오겠다길래 그냥 끊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저는 큰길가로 나갔지만 택시가 도무지 잡히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거의 쓰러지기 직전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남편은 도착했고 남편은 택시가 잡히지 않자 119를 부르더라고요. 그 때 갑자기 어떤 차 한대가 우리앞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산모 진통이 온건가요?”
“네… 택시도 안잡히고 지금 119 불렀습니다.”
“큰일이네요.. 지금 제차라도 타고 병원에 가시겠습니까? 제가 사실 소방관입니다.”
“네..? 그래주시면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남편과 저는 그분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혹시 남편분 술 드셨나요?”
“네…”
남편은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빨게지더라고요..
그분은 소방관이라며 자신을 소개했고 가는 동안 내내 산모가 진통이 왔을때 어떻게 호흡을 해야하는지 등의 각종 대처법을 알려주셨어요.
그렇게 평소에 가던 산부인과에 도착을 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문제는 산모의 뱃속의 아이가 너무 크다며 제왕절게 수술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는데요.
그 때 산부인과 의사는 자신은 못한다며 큰 병원을 빨리 가라는 것이었죠. 안그러면 산모와 태아 둘다 위험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보다 문제는 더이상 저는 호흡도 가빠라진 탓에 많이 위태로운 상태였다는 것인데요.
때문에 소방관님은 자신이 가는동안 옆에서 응급처치를 해야할것 같다며 운전할 사람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산부인과 관리인 분 중 한분이 운전을 해주시겠다고 하셔서 위기를 모면했지만 그 순간 저는 제 남편이 그렇게 미울수가 없었죠.
그렇게 기적적으로 큰 대학병원에 도착을 했고 바로 수술에 들어가 무사히 저희 쌍둥이를 낳을수가 있었습니다.
소방관 분은 제가 아이를 낳고 아이와 제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야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 뒤로 저희 부부는 쌍둥이 딸 둘을 낳고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고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무렵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던 ‘수진’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요.
어느날인가 저에게 울먹거리면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엄마… 수진이 아빠가 돌아가셨어..”
어린 제 딸들에게 친구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많이 컸었나 봅니다.
수진이라는 친구의 아빠도 소방관이라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어서 저희는 그때 그 소방관님에게 감사의 인사조차 하지 못한것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남편에게 한번 그 분을 찾아보는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남편 역시 그분에게 평생동안 고마운 은인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었더라고요.
저희는 뭔가 방법이 없을까 하고 가까운 소방서 부터 아이들이 진심을 다해 쓴 편지를 한번 보내보자 하고 보내보았죠.
그랬더니 몇일 뒤 저희 집으로 연락이 한통 오더라고요.
“안녕하세요. 김지수씨 맞으시가요?”
“아네..!”
“아 소방서로 편지를 보내셨더라고요. 확실하진 않은데 이 분 특징이나 이런거로 봐서 ‘황순철’이라고 그분같거든요”
“정말요? 혹시.. 그분 가능하시면 만나뵐수 있을까요?”
“아.. 그게… 얼마전에 이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네…?”
저는 허무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머릿속으로 뭔가 하나가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여보 혹시 황순철 이라는 분 우리애들 친구 아버지 있잖아. 그 분도 소방관이신데 얼마전에 돌아가셨잖아. 그 분 아닐까?”
저희는 갑자기 둘다 소름이 돋아 딸아이들에게 물어보았죠.
“얘들아 혹시 저번에 아빠 돌아가셨다는 친구 있잖아..”
“응 수진이? 왜 엄마?”
“어 수진이. 혹시 수진이 성이 뭐야?”
“황수진!”
심장이 덜컹 내려 앉았어요. 그래서 저는 다음날 바로 그 아이의 집으로 찾아갔죠.
그리고 그 아이에게 아빠의 성함이 뭐냐고 물었는데 ‘황순철’이라고 하더라고요.
저희 부부는 수진이에게 이런 상황을 이야기 했어요. 수진이는 엉엉 울더라고요.
수진이의 엄마는 알고보니 수진이가 태어날때 돌아가셨고 지금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다고 해요.
저희는 그 순간 이 아이를 그냥 두고볼수만은 없었습니다.
우리 애들과 똑같이 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죠.
그렇게 지금까지 수진이에게 부족한것이 없게 해주고 싶었어요. 제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고 저희 아이들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같은 분의 딸이니까요.
얼마전 수진이 시집을 보냈습니다. 식장 부모님으로 저희가 앉아 있기도 했었죠.
그리고 수진이 시집갈때 저희는 3천만원 정도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수진이는 곧죽어도 안받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수진이의 통장에 그냥 넣어줬어요.
수진이는 자신이 모은돈이랑 좀더 보태서 그 돈을 보육원에 기부를 했다더군요.
정말 속이 깊어도 이렇게 까지 깊은 아이가 있을까요?
너무 신기하고 오래된 인연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 이렇게 제보를 해봅니다.
그럼 지금까지 저의 별것 아닌 사연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